프레디 융베리 : 모델에서 코치가 되기까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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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에미 로렌스와 거너블로그, 온스타인의 같이 쓴 기사입니다.



다만 융비어천가가 좀 웃기긴하네요. 너무 길어서 쪼갰습니다. 반은 내일 올릴께요 즐감. 

GettyImages-1161238639.jpg 프레디 융베리 – 모델에서 코치가 되기까지(1)

https://theathletic.com/1289739/2019/10/16/freddie-ljungberg-the-making-of-a-model-coach/



프레디 융베리가 항상 코치를 꿈꿨냐면 그건 아니다.  그가 말하길 “에이 그건 내 계획이 아니었어.” “ 난 내삶을 사랑한다고!”



융베리가 MLS에서 뛰던 시절 동료인 스티브 자쿠아니도 동의했다. “ 누가 2009년이나 2010년 내게 “야 융베리가 나중에 뭐할 거 같냐?”라고 물어봤을 때 절대 “코치”라고 답하진 않았을 것이다. 난 아마도 융베리 레스토랑 열거나 모델활동 이어가지 않을까 싶었다.”



 융베리만큼 다양한 곳에 흥미를 가지던 사람에게 축구가 확실한 선택지로 보이진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고 말이다. 



“축구계는 이제 새로운 시대로 접어든 거 같다.” 전 아스날 감독 아르센벵거가 애슬레틱에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 “ 선수들이 자신의 커리어가 끝나더라도 이젠 충분히 다들 부유하고 유명해졌기에, 다른 직업을 찾기위해 열심히 노력할 필요 없다, 난 축구선수들이 미래 세대를 위해 클럽에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들이 이런 일들을 하면 너무 자랑스럽다.”



확실히 융베리는 벵거가 말한 바 대로 하고 있다. 아스날팬들은 눈에 띄면서 컬러풀했던 헤어스타일과 그에 걸맞던 성격을 가졌던 한 소년을 기억한다. 그리고 이제는 경기 때와 트레이세션때 사이드라인에 서있는 익숙해지고 있다. 여전히 조각 같은 외모, 강철 같은 집중력, 그러나 전과는 다른 새로운 목적을 가지고 말이다. 



 융베리는 이제 코치로서의 새로운 커리어를 받아들이고 있다. 부카요 사카와 조윌록이 융베리의 왼팔 오른팔로 있으면서 그를 얼마나 좋아하고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이야기와, 어떻게 융베리가 런던 콜니(아스날 훈련장) 가치있는 존재로 자리잡고 있는지, 그리고 우나이에메리와 그의 스태프들과 잘 대화하기위해 스페인어를 배우는 이야기들과 함께 말이다.



 경기장 내에서 호불호가 갈리던 선수가 이제는 아스날 미래의 감독으로 얘기되고 있다는건 정말 놀라운 변화이다.



융베리는 MLS 시절 구단 유튜브에서 자기가 어떻게 축구로 돌아오게 되었는지 인터뷰로 밝힌바 있다.   “ 은퇴하고 나면 어떤 상상을 한다. 적어도 난 그랬는데, “ 좋아 이제 난 원하는 걸 맘대로 할 수 있어, 이제 나보고 아침에 일어나라고도 안하고 내가 운동하기 싫으면 안해도 된다.” 하면서 말이다. 이 모든 걸 난 20년 정도 꿈꿔왔다. 그리고 이게 내게 주어지고, 1년이나 2년 정도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 보면,  “시발 이게 뭐지. 이게 존나 골프치고, 집에서 존나 쉬고… 아 이거 겁나 지루한데;”



 융베리는 그때 자신의 축구 커리어에 도움을 준 남자를 찾아보기로 했다. 아르센 벵거말이다.



 “ 난 국대시절 알게된 사람들에게도 물어봤고, 벵거에게도 물어봤다. , ‘내가 코치되면 어떨까?” 이게 정말 멍청한 생각일까?’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 아냐 전혀, 우린 니가 잘할거라고 생각해. 너가 하고싶은걸 해’ 그걸 듣고 나 역시도 ‘좋아 한번 질러보자”



아마 아스날 팬들은 융베리가 경기때도 질러버릴 때마다 득점하던 걸 기억하기에 이에 대해 잘 알것이다..



융베리가 코치코스를 수강할 때, 그 코스에서는 본인이 직접 선택한 클럽의 젊은 선수들과 며칠 같이 보내도록 요구했다. 융베리는 자신이 커리어를 시작했던 Halmstads Boldklub(이하 HBK)을 선택했다.



 니클라스 구드문손은 융베리가 HBK에 처음 퍼스트팀 드레싱룸에 등장했을 때 있던 융베리의 팀메이트였다. 그리고 피치위에 설 때를 제외하곤 조용했던 소년으로 그를 기억했다. 거기서 융베리는 개성이 강했던 선수로 기억한다.



 “융베리가 17살 때 1군에 승격 했는데, 이미 1군에는 융베리보다 2년이나 3년 먼저 유스에서 들어온 선수들이 있었다.” “ 드레싱룸에서는 꽤나 부끄러움이 있던 애였다. 그리고 가끔 그와 그의 친구들은 훈련에 늦게 와서 별금을 내곤 했다. 그러나 확실히 융베리가 스킬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융베리가 가진 특별한 것을 발견했고 그가 엄청난 커리어를 쌓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



“ 그가 정기적으로 출전했고 우리는 그가 1995년 파르마와의 컵위너스컵 때 그 유명했던 경기에서 어떻게 플레이했는지 기억한다. 그는 18살이었는데 스토이치코프를 제쳤다. 융베리는 그로부터 팔꿈치를 맞았는데, 번쩍 일어나서 스토이치코프에게 불같이 화냈다. 확실히 초기부터 자신감이 넘쳤던 선수였다.”



 “ 그는 Halmstad에서 볼 수 있는 축구를 사랑하는 평범한 남자였다. 그를 둘러싼 환경과 사람들은 다 평범했다. 비록 특별한 사람일지라도, 잘난듯이 행동하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융베리는 즐라탄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스웨덴 작은 도시에서 그렇게 행동하면 큰일 난다.”



 구드몬슨은 융베리보다 5살 많았고 융베리보다 먼저 프리미어리그로 넘어가서 3시즌을 보냈다. 그리고 융베리와 그의 가족들이 얼마나 그 이적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했는지도 회고했다.



 “ 꽤나 초기부터 융베리는 자신의 커리어를 신경썼죠, 그는 매우 프로페셔녈했습니다. 제 아버지는 HBK팀 소속 선수들의 가족 모임에 회장이었습니다. 프레디의 어머니와 제 아버지는 제가 블랙번 떠나고 나서 많은 대화를 나눴죠. 그들은 제가 잘지내고 있는지 정말 궁금해했습니다. 프레디의 가족은 프레디에게 많은 관심을 가졌고 프레디도 축구선수로서의 삶에 충실했습니다.”



 Markus Wephton은 Halmstad에 살고 있고 그는 그의 지역 팀과 아스날을 동시에 열정적으로 몇십년간 응원했다. 그는 이 스웨덴 클럽에 처음 등장했을 때의 어린 융베리는 다른 선수들과 달랐다고 기억한다. “ 전 마을밖에서 프레디를 본 적이 없습니다. 전 그 시기 다른 선수들과 비슷한 나이대였습니다. 우리는 나이트 클럽이나 바에서 그 선수들을 목격하곤 했죠. 그러나 프레디는 달랐습니다. 그는 매우 경기에 집중했고 진지하게 생각했다고 그때부터 명성이 꽤나 좋았죠.”



 프레디는  그 당시 원정경기를 떠날 때면 팀코치에게 자기 배개를 가져온 것으로 유명했다. 고속도로도 도달하기전에 프레디는 골아떨어졌다. 프레디는 말이 많진 않았지만 인기도 많았고 확실한 결단력과, 존재감으로 인해 팀 내에서도 호평이었다.



 융베리의 Halmstad에서 보냈던 시간들은 그 마을의 온갖 다른 스포츠 활동, 핸드볼이나 테니스등등 과 함께 경기장 벽에 세겨져있다.  (참고로 로이 호지슨도 거기 새겨져있는데, 로이호지슨은 감독으로서 70년대에 거기서 Halmstad의 첫 리그우승을 이끈바가 있다.)



융베리가 아스날 스카우터레이더에 들어온 건 16살 때였다. 그러나 융베리는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고 느껴서 스웨덴 떠나길 거부했다. 아스날은 유로 1998 예선전때 화려하게 융베리가 등장할 때까진 이 계획에 만족하고 있었다.



갑자기 아스날과 벵거는 자신들이 가진 관심을 더 가속시켰다. 첼시가 뒷늦게 경쟁에 달라붙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벵거는 이 남자를 얻었다. 





 융베리가 아스날 왔을 때, 그는 벵거가 포지션 변경할 계획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융베리는 항상 중앙 플레이메이커로 뛰어왔는데, 갑자기 윙으로 변경된 것이다. 처음 그는 당혹스러웠고 바라던 바가 아니었다.



 런던에서의 첫시즌, 융베리는 에이전트를 만나 이 얘기를 나눴다. 그는 윙어가 별로 안끌리고 그가 중앙 공미로 뛸 수 있는 다른 클럽들을 알아봐달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반응은 얼마나 자신의 플레이에 대해서 융베리가 많이 생각하고 자신의 성공할 수 있는 강점이 무엇인지 고민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서 책 ‘Invincible’에서도 프레디가 설명 한 바 있는데, “ 그 전이었으면 그렇게 선택안했을 것이다. 난 아스날을 좋아하고 아르센을 좋아했고, 내 팀동료를 좋아했기에 그 결정을 받아들였다. 고민해보고 노력해보고 이걸 할 수 있다고 되내었다. 포변에 대해 배우는걸 불평하는 태도에서 난 그때 여름 태도를 바꾸기로 결정했다. 21살 때 살면서 처음으로 윙어로 뛰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



뭐 그 뒷이야기는 윙어포지션에서 뒤따라 들어가며,기록한골들과 어시스트, 투지있는 모습, 트로피들, 무패우승까지 아스날 역사에서 그 유명한 시대의 주역으로 기억된다.



 융베리는 지적인 탐구를 많이 하면서 오픈 마인드를 가진 선수로 클럽에 기억되며 두려움 없이 요즘 아스날에서 헥터가 그런 이미지인데, 관습을 따르지않는 선수로 클럽에선 기억된다.



 그는 확실히 자신만의 특이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전 아스날 스태프멤버 중 한명이 회고하기를 “2000-2001시즌 즈음, 융베리가 스태프 중 한명에게 자정에 전화를 걸었다. 그 스태프는 자고 있다가 전화가 울렸고 이름이 융베리라고 써있는 걸 봤다고 했다. 그리고 “아 잘 대답해야하는데’하면서 전화를 받았는데, ‘안녕’이라는 인사도 없이 융베리가 갑자기 말했다. ‘아 저 런던 중앙에 있는데, 제가 노란선 한줄 있는 여기다가 주차해도 괜찮은건가요?” 그 스태프 멤버는 “ 아 지금 자정이야 제발!” 융베리는 술 마시는 타입도 아니어서, 술도 안 마시고 저렇게 전화한거다. 융베리의 사회성은 다른 사람들과는 좀 유별났다.”

GettyImages-2692954-e1570987805559.jpg 프레디 융베리 – 모델에서 코치가 되기까지(1)

 금주는 융베리가 자신의 커리어를 어떻게 꼼꼼하게 관리하는 지 일부이다. 그는 자유분방한 영혼을 가진 사람처럼 보였지만 그 이면에는 상당히 엄격한 자신의 루틴이 있다.



 그는 매일 밤 피지오로부터 관리받거나 마사지받는 시간이 있는데, 만일 자신의 약속을 20분 앞당기는 것도 짜증낸다.



 융베리는 의료진이 처방한 약의 목적과 내용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치즈 알러지 때문에 호텔 갈때 마다 식단에 대해서 살펴보곤 했다.



 심지어 트레이닝 외적인 삻에서도 그는 엄격한 삶을 유지했다. 그는 Hampsted라는 런던 북쪽에 살았다. 늦은 저녁으로 같은 이탈리아 식당에서 반복해서 먹곤 했다. 그는 사람들 눈에 띄지않으려고 셰프들이 있는 주방에서 밥을 먹곤 했다. 



 아마도 이러한 특징들,  디테일에 대해 주목하고, 매 삶 규칙성을 보이는 것들이 그가 코치를 선택할지도 모른다는 징후였을지도 모른다.



 융베리의 전 아스날 팀동료인 리딕슨은 코치세계로 융베리가 갑자기 변모한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 난 항상 융베리의 선수로서의 축구지능과, 항상 옳은 선택을 하는 결단력에 대해서 높게 생각했다.” , “ 융베리처럼 플레이하면 확실히 지능적으로 해야한다. 상대 수비수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야한다”



 “융베리는 본능에 기반한 플레이하는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어느 공간에 들어가야 할지 언제 뛰어들어갈 타이밍인지 아는 선수였습니다. 그런 종류의 선수들은 코치직으로 이동하기에 좋은 툴을 가져서 코치제안을 받곤 하죠.”



 “ 경기장 외부의 융베리 이미지 때문에 아마도 사전 준비없이 뛰댕기며 화려한 플레이를 선호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융베리의 플레이는 지능적인 모습입니다. 단지 달리기만 해서는 융베리가 하는 것처럼 플레이 할 수 없습니다. 융베리의 축구지능은 그가 코치능력을 보이기에 충분합니다.”



 “ 융베리는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지능적인 축구선수들은, 전 융베리도 이 라인업에 포함합니다만, 공간을 활용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코치직을 할 때 다른 이들도 그 공간을 이용하도록 할 줄 압니다. 아마 그가 코치직을 걷는다고 해도 전 놀랄지 않겠네요.”



 또 융베리의 유명한 위닝 멘탈리티도 코치로서 흥미로운 부분이다.



 “ 코치직을 수행할 때 단호한 결정을 어떻게 내려야 효율적인지 따지는 부분은 아주 어려운 일이죠.” 리 딕슨은 말했다. “ 선수 때는 자신이 어디로 가야하고 어떻게 해야할지만 결정하면 됩니다. 그러나 코치가 되면 스쿼드에 있는 20명의 선수를 다뤄야하죠. 그랬기에 그 적응력이 뛰어나야합니다. 선수 각자들은 코치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죠. 예를 들어 로이킨 같은 사람을 생각해보죠. 그는 굉장히 의지가 센 사람입니다. 코치로서 선수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그걸 바로 결정에 반영합니다. 그러나 진짜 투쟁심이 강한 코치들이라도 현대 선수들에게는 유연성을 가져야하죠.



벵거는 항상 융베리의 위닝멘탈리티에 대해 열정적으로 얘기했습니다. “ 융베리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파이터다.” “그는 자신의 투쟁심 때문에 죽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싸울 원동력을 찾아다닐 선수죠.”



 “그 투쟁심은 융베리를 하이버리에서 레전드로 만들었다. 아스날과 융베리 사이 관계는 서로 상호관계였다. 그는 런던에 사랑빠졌고, 그가 런던에 지금도 머물고 있는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 허나 그 사이 잠깐 독일에 있던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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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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