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의 챔스, 코파 리베르타 도레스의 태동기에 대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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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파 리베르타도레스는 남미 대륙에서 가장 큰 축구대회다.  1960년대 시작해서 2020년까지 총 7개의 대륙에서 25개의 팀이 우승했다. 


 그리고 그 기간동안 역사적인 경기들과 축구사에 영원히 기록될 시대의 아이콘들과 함께했다.


 60년대에 축구황제 ‘펠레’의 산토스, 그리고 그 펠레의 라이벌로서, 아니 코파리베르타 도레스에서만큼은 압도했다고 할 수 있는 알베르토 스펜서의 페냐롤


 70년대 남미축구에서 아르헨티나 시대를 열었고 72,73,74 3연속 우승뒤 75년에 다시 우승하고, 프란시스코 사, 호제 오마르 파스토리자, 히카르도 보치니, 다니엘 베르토니와 같은 걸출한 아르헨티나 레전드를 배출해서 역대 최다 우승을 기록하고 있는 CA의 인데펜디엔테, 그리고 이를 이어받아 70년대 후반 아르헨전성기를 유지시키고 78년 월드컵 우승의 주축이었던 남미 축구 최대 거인 보카주니어스


 주춤했던 브라질 축구를 다시한번 중심으로 이끌고 인터콘티넨탈컵에서 붉은 제국의 리버풀을 전반전에만 어시트릭으로 무너뜨리며 81년도를 자기해로 만든 지코의 플라멩구


시계를 좀더 빠르게 돌려서 00년대로 돌리면 리켈메,코르도바 마우리시오 세르나등이 뛰던 보카주니어스,   디에고, 히카르도 올리베이라, 엘라누,알렉스가 뛰면서 펠레시절 이후 다시 명성을 날린 산토스,  축구계에서 4대 미드필더로 불렸던 베론이 이끌던 에스투디안테스까지



남미축구를 넘어 세계축구에 이름을 알렸던 인물들은 코파리베르타도레스에 그 방점을 먼저 찍은바가 있다.



 그리고 그들의 명성은 단순히 남미대륙에만 갇혀있던 것은 아니다.  유로피언컵 우승자와 코리베르타 도레스 우승자가 만나 대결을 했던 인터컨티넨탈 컵은 명맥이 끊어지는 04년 까지 서로 유럽클럽 21번 우승하고 남미클럽은 22번 우승하면서 남미축구는 유럽축구와 견주어서도 뒤떨어지는 것이 아닌 오히려 앞서기까지했었다는걸 보여줬다.



 이렇게 현재 세계 축구에 있어서 당당히 한축을 가졌고 한때는 어쩌면 축구중심이라고 할 수 있었던 코파 리베르타 도레스 태동기에 대해서 살펴보자.




1.  아르헨티나 우르과이간 클럽 대항전, 코파알다오


남미에서 국가간 클럽 대항전이 시작된 것은 1913년부터 였다.  


아르헨티나와 우르과이 이 두 국가의 클럽이 겨루는 코파 알다오였다. 




1.jpg 남미의 챔스, 코파 리베르타 도레스의 태동기에 대해 알아보자



 코파 히카르도 알다오 라고 공식 이름이 있지만, 보통은 Campeonato Rioplatense 내지는 Copa Río de La Plata라고 불렸다. 


대회 이름에 사람이름인 ricardo aldao가 붙었던 이유는 당시 아르헨티나 축구계의 중역중 한명이었고 훗날 아르헨티나 축구협회 회장이되는 히카르도 알다오가 트로피를 기증했기때문이다.





2.jpg 남미의 챔스, 코파 리베르타 도레스의 태동기에 대해 알아보자


1900년대 초반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사이의 친선경기는 국가간 거리감이 가까워서 자주 일어났고 대회는 이러한 분위기에서 탄생했다.


 우루과이랑 아르헨티나 각 리그의 챔피언이 서로 맞붙는 형태였던 이 대회는 1913년 탄생했지만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성사되질 못했고, 제대로 된 대회는 1916년부터 개최되었다. 우루과이의 클루브 나시오날 데 풋볼이 우승하면서 원년 챔피언이 되었다.


 이렇게 시작한 대회는 매년 열리기로 결의했지만 정기와 비정기를 오가면서 대회를 개최했다.




그럼에도 꽤나 성공적으로 흥행했고 이 대회의 성공을 본 우르과이와 아르헨티나 축구 관계자들은 남미 대륙 전체 클럽들이 서로 겨루는 토너먼트를 하면 어떨까하고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다.



2. 코파 리베트라 도레스와 챔피언스리그 양쪽에 영향을 끼쳤던 1948 South American Championship of Champions



 1929년 나시오날의 회장이었던 Roberto Espil 과 José Usera Bermúdez는 Conmebol( uefa의 남미형태)에 속한 각 나라별 리그 챔피언들이 맞붙는 방향을 고민했고 espil은 나중에 각 국가별 리그 준우승까지 포함시키는 대회를 구상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아이디어를 확장시켰던 사람은 칠레의 클럽 colo-colo의 회장이었던 Alvarez Marín이었고 1930년대 후반 이 대륙내 국가간 클럽대항전이라는 아이디어는 남미 축구계 모두의 화두가 되었다.


그리고 Conmebol의 회장 Luis Valenzuela이 직접 행동을 하면서 1948년 코파 리베르타 도레스의 전신인 대회가 개최되었다. 


대회 이름은 South American Championship of Champions , 스페인어로는 Campeonato Sudamericano de Campeones 였다





3.jpg 남미의 챔스, 코파 리베르타 도레스의 태동기에 대해 알아보자




대회에는 총 7개팀이 참여했다.


 아르헨티나 리그 우승팀 리버플레이트, 볼리비아의 리토랄, 브라질의바스코 다가마, 에콰도르 챔피언 에멜섹,  우승팀이 거부해서 대신 참가한 페루의 준우승팀 데포르티보 무니시펠, 우루과이의 나시오날, 마지막으로 이 대회의 호스트이자 칠레의 챔피언 콜로-콜로까지


이렇게 7개 클럽이 참가했다. 


흥미로운 점은 몇몇 국가 경우에는 주단위 리그만 있고 아직 전국리그가 없었기에, 이들 국가에서는 국가내 의논을 통해 선발되었다.


 볼리비아의 경우는 수도 라피스 리그의 챔피언으로서 리토랄이 참여했고 브라질 역시 전국단위 리그가 없어서 리우 데자이루 지역 리그 우승팀이 참가했으며 에콰도르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또 콜롬비아의 경우에는 그 당시 조직된 리그 자체가 없어서 참여하질 못했고 파라과이의 경우 1947년 내전의 영향으로 참여하질 못했다.


 이 7개 클럽은 토너먼트가 아닌 6경기를 치루는 짧은 리그형태로 치뤘으며 우승은 브라질의 바스코 다가마가 차지했다.  당시 대회에 눈여겨볼 선수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디 스테파노’가 리버플레이트 소속으로 뛰었다. 리버플레이트는 아쉽게도 2위를 차지했다.



 


 1948년 이 대회는 엄청난 성공을 했지만 바로 코파 리베르타 도레스 창설로 이어지진 않았다. 오히려 이 대회는 엉뚱한 대륙에 파급력을 갖고 왔는데, 바로 유럽이다.  이 대회를 취재하고있던 르퀴프의 기자 자크 페런은 이러한 클럽대항전이 가지는 아이디어에 매료되어서 유럽으로 돌아와서 르퀴프 편집장에게 전달했고 르퀴프 편집장이었던 가브리엘 하노트는 uefa에 아이디어르를 제공하면서  유로피언컵 창설에 시초가 되었다.


실제로 자크페런은 훗날 globe esporte인터뷰에서 이 남미 챔피언 대회가 유로피언컵 창설의 원동력이었고 우리는 이 예시를 따랐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프랑스와 uefa에서 유로피언컵이 개최되었고 이게 또 역시 성공적이고 이 소식은 거꾸로 다시 남미로 들어왔다.



3. 코파 리베르타 도레스와 챔피언스 리그의 탄생




 남미의 각 대표들은 uefa가 개최한 유로피언컵의 흥행 소식을 듣고  48년 열린 일회성 대회를 다시 부활시킬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자기들이 오히려 이 아이디어의 원조격이었고 실제로 대회를 개최한 적이 있었기에 대회를 다시 개최하는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것 같아보였다.



 거기다가 uefa의 회장 헨리 델라운 역시 매년 매해 유로피언컵 우승자와 남미컵 우승자가 대결을 하자는 아이디어까지 넌지시 던졌다.


그러나 1958년 남미의 국가의 협회들의 대표들이 모인 회의장에서 각 국가마다 의견이 갈렸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남미 클럽 챔피언쉽에 찬성했고 우루과이의 경우에는 이러한 상위대회는 각 국가 자체 리그의 경쟁력을 약화시킬것이라고 반대했다.


이러한 긴 토론에서 아르헨티나는 월드컵처럼 4년마다 열리는 것이 어떨까냐고 제안하기도 했다.


 당시 남미축구의 두 거목은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였기에 이 둘의 의견대립은 꽤나 길게 갔으나 다른 국가들 칠레를 포함한 모두가 이 대회에 찬성했고 1959년 투표결과 우루과이를 제외한 전국가가 찬성표를 날리면서 copa de campeones(코파 리베르타도레스로 바뀌기전 이름) 에 합의했다.


 이렇게 1960년 1회 copa de campeones 가 개최했다.


 아이러니한 점은 반대표를 던진 우루과이의 클럽 페냐롤이  훗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의 황제라고 할 수있는 알베르토 스펜서를 업고 1회 대회에 우승했다는 점이다.








4.jpg 남미의 챔스, 코파 리베르타 도레스의 태동기에 대해 알아보자





https://youtu.be/iBXJv0bPWW8


영상은 남미의 대표클럽들에 대해서 훑어봤고


영상에 못넣은 이야기를 글로 적어봤습니다. 영상과 글은 내용이 완전 다른내용이니깐 즐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개의 등록된 댓글이 있습니다.
푸코
챔스가 남미에서 시작된 거였군요
치즈돈까스
저도 자료 찾으면서 너무 흥미로웠네요 ㅋㅋ
Frank Ocean
오오 유러피언컵의 근-본
치즈돈까스
그부분에 초점을 두고 썼어야했는데

이게 첨에 쓸때 의도가 그방향이 아니였고 글을 쓸려고 자료찾다가 나와서

글이 좀 심심해지고 반응이 적은 글이 되었네요 ㅠ
Frank Ocean
대다수의 해축빠들은 유럽축구 리그+챔스에 관심이 많은 관계로 ㅋㅋㅋ 그런 부분이 이목 끌기 좋긴 하죠
암행어사의방자
치돈님 솔직히 국내통계 원탑이신듯 어제 optapro 번역글 찾아보다가 모든글은 치돈님이 처리한다는 사실을 알아버렸음.. ㄱㅅㄱㅅ.. 국통원탑 치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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